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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에 대한 10가지 사실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삶 들여다 보기 글 : 구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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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한 아인슈타인.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인 그는 광양자설, 브라운운동의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구해 1905년 발표하였으며,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인 맨해튼계획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보이는 그의 삶 뒤에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사실 10가지를 소개한다.

     

     

    1. 16세에 독일 시민권 포기

     

    천재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국가주의를 싫어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16세에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1901년 스위스의 시민권을 딸 때까지 무국적자로 살았다. 이와는 별개로 어린 시절의 아인슈타인은 판에 박힌 학습과 교육방식을 경멸해 무례한 행동을 자주 했다고도 전해진다.

     

     



    2. 폴리테크닉대학 물리학 수업의 유일한 여학생과 결혼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부인 밀레바 마릭은 취리히 폴리테크닉대학의 아인슈타인 섹션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수학과 과학에 열정을 갖고 있던 물리학자였지만 아인슈타인과 결혼해 자녀를 출산한 후 꿈을 포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5년 후 이혼하게 된다.

     

     

    3. 아인슈타인에 대한 FBI의 자료가 무려 1,427페이지

     

    지난 1933년 FBI는 아인슈타인이 세 번째로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 아인슈타인에 대한 서류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자료의 수가 자그마치 1,427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이 파일은 아인슈타인의 평화주의 및 사회주의 단체와의 연관성에 초점을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4.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사망한 딸의 존재

     

    아인슈타인에게 사생아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의 부인 밀레바는 1902년 세르비아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체류하던 중 딸 리세릴을 낳았지만 얼마 안 돼 홍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딸과 만난 적이 없으며, 딸 리세릴의 존재는 1987년 아인슈타인의 편지가 공개되기 전까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5. 노벨상 상금 전액을 첫 번째 부인에게 이혼료로 지급

     

    앞서 언급했듯이 아인슈타인과 첫 번째 부인 밀레바는 결혼하고 15년 후 이혼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수상을 앞두고 밀레바에게 이혼을 대가로 노벨상 상금 전부를 주기로 했다. 상금은 모두 3만 2천 달러로, 당시 교수 연봉의 무려 1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6. 아인슈타인의 두 번째 부인은 사촌 여동생

     

    첫 번째 부인 밀레바와 이혼 후 얼마 지나 아인슈타인은 재혼했다. 재혼 상대는 아인슈타인의 이모의 딸인 엘사였다. 즉,그는 사촌 여동생과 두 번째 결혼을 한 것인데, 사촌 여동생이자 두 번째 부인인 엘사의 아버지와 아인슈타인의 아버지 또한 사촌지간이었다고 한다.

     

     

    7. 시민권과 자유 언론의 강력한 후원자

     

    아인슈타인은 시민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시민운동가였는데, 시민권과 자유 언론의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1951년 W.E.B. 뒤 보이스가 첩자로 기소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그를 위해 지원해 증언했다. 당시 뒤 보이스의 변호사가 아인슈타인이 나타날 것을 법원에 알리자 판사는 사건을 기각하도록 하기도 했다.

     

     

    8. 둘째 아들의 정신분열증

     

    아인슈타인의 둘째 아들인 에드워드는 정신분열증으로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다. 에드워드는 정신분석에 매료되었고, 프로이트의 광팬이었다. 아인슈타인과 에드워드는 편지를 주고 받기는 했지만 아인슈타인이 1933년 미국에 이민을 간 후로부터는 아들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는 정신병원에서 5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9. 독일 화학자 프릿츠 하버와 친구

     

    아인슈타인은 화학전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화학자 프릿츠 하버와 친구 관계였다고 한다. 프릿츠 하버는 베를린에서 아인슈타인을 채용하도록 도와주었고, 이 둘은 가까운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세계 1차 대전 동안 그는 염소가스를 개발했는데, 염소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면 통증을 일으키며 병사를 질식시켰다. 이 때문에 하버는 화학전의 아버지로 불린다.

     

     

    10. 러시아 스파이와의 사랑

     

    아인슈타인은 1935년 자신의 의붓딸이 소개해준 마가리타 코낸코바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1998년 소더비가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이들이 주고 받은 9통의 편지를 경매에 내놓았는데, 역사가들은 이 건에 대해 확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스파이 마스터가 쓴 책에 의하면 코넨코바는 러시아의 요원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한다.

     

     

    구효영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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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egory :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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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로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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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수현 2017-10-04 19:20:37

        확실히 정신(자아) 분석은 함부로 하면 안됨..

        자아 분석 제대로 들어간 사람은 괴짜가 되거나 초연해지거나 정신병 걸리거나 셋 중 하나는 무조건 걸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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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TARU 2017-08-02 08:52:30

        첫번째 부인은 정신병동에서....그 딸도....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친척과 바로 재혼...근친상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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