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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안 된다'는 편견을 깨부순 여성 정치가 세계적인 여성 정치가 글 : 공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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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정치계에서는 여성의 입문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남성 정치가에 비해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차별이 심했던 그 옛날에도 ‘여자라서 안 돼’라는 편견을 과감하게 부수고 정치가로서 그 역할을 묵묵히 해낸 여성 정치가들이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아직까지도 왕성한 정치 활동을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치가도 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에 여성이 가진 섬세함을 더해 그 나라와 국민을 알뜰살뜰하게 보살핀 여성 정치가를 알아보자.

     

    영국, 마가렛 대처(1925년-2013년)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우파 정책과 함께 장기 집권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쳤는데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내각 위원들을 해임하는 강경책을 펼치기도 했다. 때로는 그 강경책 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했는데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꿔준 것은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영국령인 포클랜드를 침공했고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대처의 리더십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 가장 강력했던 노조와 정면 대결을 통해 길들였고 경제 회복세가 이어졌다. 교육제도와 의료제도 역시 과감한 혁신을 했다. 하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는 듯한 그녀의 독선적 리더십은 불만을 낳았고 결국 다음 경선에서 불참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혁신적이면서도 과감한 사회 개혁 시도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파키스탄, 베나지르 부토(1953년-2007년)

     

    명문 정치 집안의 딸로 태어난 베나지르 부토는 미국 하버드에서 공부를 하던 도중 수상이었던 아버지가 쿠데타에 의해 감금되자 아버지를 돕기 위해 바로 귀국해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사형을 당하게 됐고 그녀는 아버지가 이끌었던 당의 지도자가 되어 군사 정권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체포되고 3년간의 옥살이 후에 망명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임시 정부를 설립해 반정부 운동을 펼쳤고 결국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반정부를 해체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총선을 통해 파키스탄 최초의 여성 수상으로 당선됐는데 이는 이슬람권에서도 최초로 있었던 일이다. 몇 년간의 정치활동 후 그녀는 암살범의 테러로 사망했다. 정치에 집착을 보이기도 했지만 군사정권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민주화 개혁 운동을 시도하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파키스탄의 유명한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

     

    필리핀, 코라손 아키노(1933년-2009년)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코라손 아키노는 야당 지도자였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의원의 아내였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한 주부로 살았지만 남편이 괴한에 의해 암살되고 미국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녀는 그의 뒤를 이어 반(反) 정부 지도자로 나서게 됐고 미국에서도 필리핀의 민주회복을 위해 투쟁하다가 필리핀으로 돌아와 폭력이 아닌 비폭력 혁명을 통해 약 20년간 장기 집권해온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 체제를 끝냈다. 그리고 그녀는 필리핀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필리핀 민주화 개혁을 주도하는 정책을 펼쳤다.

     

    스리랑카,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1916년-2000년)

     

    스리랑카, 그리고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로 그녀의 업적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리기도 하지만 그녀를 스리랑카의 40여 년간의 헌정사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 중 솔로몬 반다라나이케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이후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남편이 총선에 출마해 수상에 당선된다. 그리고 그녀는 정치인의 아내로서 내조를 다하게 되는데 남편의 사망 후 정당이 해체 직전까지 가자 그녀가 정당의 지도자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최초의 여성 수상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정치를 잘 알지 못했던 그녀는 다음 총선에서 패배를 하게 되고 5년간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키워 재출마해 다시 한번 압승을 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신중한 국정운영과 더불어 대외적으로도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으며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1954년-)

     

    독일인의 마음을 훔친 앙겔라 마르켈은 독일 내 최장수 여성 총리로서 그녀의 리더십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작 아이의 엄마는 아니지만 따뜻한 이미지와 평소 소탈한 성격 때문에 무터(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독일의 잘못을 사과했고 그 책임에 대해서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기도 하지만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그 정책을 포기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더 좋은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그녀는 포용성을 보여주는 리더십을 펼치기도 하지만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단호함을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모습의 정치로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1947년-)

     

    미국은 여성 정치의 불모지라고 불린다. 때문에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생 차별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퍼스트레이디, 상원 의원, 국무장관을 거치며 여성이 아닌 힐러리 클린턴 인간 그 자체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면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힘든 싸움을 절대 멈추지 않았고 현재도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 강연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을 응원했고 페미니스트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비록 2016년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트럼프에게 패배했지만 그녀는 더 나은 미국을 만들기 위해 다음을 기약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빅토리아 우드헐(1838년-1927년)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헌법에 첫 명시된 것은 1920년이지만 사실 1872년 빅토리아 우드헐은 여성 평등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여성 최초로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그녀가 처음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19세기 당시 여성들에게는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첫 남편의 외도를 안 그녀는 여성들에게도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를 비롯해 여성의 참정권과 자유연애 등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사회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여성 인권운동가로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여성 최초로 의회에 직접 참정권을 청원하는 등 여성 권리 신장에 힘썼다.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단 한 명의 선거인도 모이지 않아 실패했지만 그녀가 미국 역사에서 여성 인권운동을 위해 진중한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핀란드, 타르야 할로넨(1943년-)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겉치레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녀는 사회민주당에 입당 후 총리실의 변호사로 근무했다. 이후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노동자의 복지와 권리,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그리고 몇 부처의 장관을 거쳐 제11대와 12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됐는데 퇴임 당시 그녀의 지지율이 80%에 육박한 것을 보면 국민들이 그녀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다.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이기 이전에 핀란드의 한 국민이라는 생각으로 소탈한 모습과 친근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따뜻하고 공정한 리더십으로 사랑받았다.

     

    인도, 인디라 간디(1917년-1984년)

     

    독립운동 때문에 9번이나 수감생활을 했던 아버지, 그리고 온 가족이 다 감옥에 끌려가 혼자 지내야만 했던 14살 딸에게 아버지는 옥중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딸에게 민족정신과 더불어 올바른 세계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인도의 첫 수상인 네루 간디 그리고 그 딸은 여성 정치가로 성장해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를 지낸 인디라 간디다. 그녀는 BBC 방송의 설문조사에서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여성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준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도 하고 방글라데시 독립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시크교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사건을 계기로 결국 시크교 경호원들에 의해 죽게 된다.

     

    칠레, 미첼 바첼레트(1951년-)

     

    미첼 바첼레트는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과거 공군 장성이었던 아버지는 쿠데타 과정에서 고문을 당하다 옥사했다. 그녀 역시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고문을 받았고 호주와 동독 등지에서 의학 공부를 하며 시련의 시기를 보냈다. 칠레에 돌아와서도 정권의 계속적인 괴롭힘으로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고 공공보건 쪽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칠레의 민주화 운동과 함께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붕괴되면서 그녀는 보건부에서 일을 시작하여, 남아메리카 최초로 여성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유엔의 여성기구 총재를 역임하며 양성평등과 여성권익 증진을 위해 일했다. 2018년 8월 유엔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미첼 바첼레트를 신임 유엔 인권 최고 대표로 공식 임명했다. 

     

     

    공인혜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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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egory : 이슈
    • Tags : 여성정치가,여성정치인,정치인,세계여성정치인,유명정치인,마가렛대처,앙겔라메르켈,힐러리클린턴

    댓글 3로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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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아예진 2018-10-11 08:25:25

        오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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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예진님께 댓글 쓰기
      • 최정나 2018-09-30 11:52:08

        트럼프같은 돌머리한테도 졌는데 힐러리가 다시 대선에 나온다고 당선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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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나님께 댓글 쓰기
      • 몰재기 2018-09-23 00:06:46

        존경합니다. 바라건데 용감하고 가장 뛰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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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재기님께 댓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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