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간호사 '태움' 문화, 근본적 원인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간호사 '태움' 문화, 근본적 원인은? 간호사를 사지로 모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글 : 이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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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돌보는 역할을 하는 간호사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했다. 사람들은 그 원인에 ‘태움 문화’를 꼽았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 담긴 일종의 은어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이나 따돌림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뜻한다. 태움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지 않아 여전히 간호사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무엇부터 개선해야 할까?

'병원 사람들의 조문도 받고 싶지 않다'

2019년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1월 5일,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가 자택에서 약물 과다 투여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간호사의 유족들은 평소 그가 직장에서의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알렸다. ‘오늘 밥 한 끼도 못 먹었다’, ‘오늘 물 한 모금도 못 먹었다’, ‘커피 타다가 커피가 넘쳐서 혼났다’ 등 살아생전 가족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괴로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슬리퍼 끌리는 소리조차 눈치가 보여 새 것으로 갈아 신을 정도였다. 이 병원에서 일한 지 5년 됐으나, 유서에는 “나 발견하면 우리 병원 가지 말아줘”라는 함께 “병원 사람들 조문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런 안타까운 선택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2018년 2월에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故 박선욱 간호사가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다른 병원은 지원하지 않을 만큼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감행했다. 경찰은 병원 내에서 폭행, 모욕, 가혹 행위 등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혐의없음'으로 내사를 종결했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간호사의 극단적인 선택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악습을 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 살리는 병원에서 도사리는 살인적인 스케줄

왜 사람 살리는 병원에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간호사 집단의 ‘태움’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규 간호사가 일을 미숙하게 처리할 때, 인격모독을 일삼는 문화가 그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태움 문화를 단순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좀 더 심층적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일단 간호사가 병원에서 해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은데, 인력이 없다. 3교대 근무에, 초과 근무는 일상이며, 점심시간도 따로 없어 늘 허기진 상태에서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 외과중환자실 간호사로 20년 넘게 일한 김현아 씨의 저서 ‘나는 간호사입니다’에 따르면 응급환자를 옮겨줄 사람이 없어 직접 그 일을 하다 허리를 다치고도 대체 인력이 없어 다친 허리를 복대로 감아가며 환자들을 돌봤다고 밝혔다. ‘급작스러운 심폐소생술이 끝난 뒤 환자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져도 정신없던 순간에 분실된 응급 비품은 간호사들의 사비로 채워놓아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병원 행사가 있으면 휴일을 반납해가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장기자랑을 준비해 가야 했다.’라고 언급하며 환자를 돌보는 업무 이외에도 병원의 간호사는 바쁜 와중에 추가적인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근무시간 내 화장실 한 번 못 갈 정도로 쉴 틈이 없는 살인적인 일정을 매번 소화해내야 하는 간호사에게 늘 견뎌내기 벅찬 하루가 도사리고 있는 수준이다.

인건비 줄이려고... 환자에게 피해 갈 수밖에

사진: Youtube 채널 <널스맘>

간호사로 근무 중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널스맘’은 간호사의 인계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간호사는 삼교대를 통해 일을 연속적으로 진행하는데, 인계 과정에서 전 간호사가 일을 끝내지 못하거나 실수를 했을 때 그다음으로 일하는 간호사는 전 간호사의 일과 실수를 모두 수습해야 하는 시스템이 서로에게 업무를 과중시킨다고 언급했다. 병원이라는 곳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경계해야 하고, 급박하게 돌아가서 다른 간호사의 실수를 수습해줄 여유가 부족하여 ‘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는 12명, 미국(5.3명), 영국(8.6명) 비하면 간호사 한 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선진국은 중환자실 간호사는 환자를 1명씩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2~3배 더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원영 간호사는 KBS 뉴스 인터뷰에서 ‘기존 간호사가 여유롭다면 신입 간호사가 일을 잘 못해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다시 해보라고 기다려줄 수 있겠지만, 보는 환자 수도 그대로, 업무량도 그대로다 보니 조급증이 나게 되어 결국 화를 내게 된다’고 밝혔다. 결국, 병원 측에서 인건비를 아끼려다 보니 인력이 부족하게 되고, 부족한 인력만큼 간호사 한 명이 감내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환자들에게도 고스란히 피해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 시급

대한간호협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에서 응답자의 40.9%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8년 복지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는 5.4년이고, 신규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은 무려 33.9%에 이른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18년 3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직 간호사에게는 현장을 목소리를 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간호대 입학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간호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안은 지금도 간호학생이 실습할 공간이 없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병원 실습하는 학생이 많아 오히려 학습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병원 측에서는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많아지니 환경을 개선하지 않아도 일할 사람은 널렸다는 인식이 더욱더 확산될 수도 있다. 또한, 대책에 포함됐던 ‘간호사 인권센터’는 대한간호협회 내 통합콜센터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 상담 자격을 갖춘 상담원이 없는 것으로 JTBC 뉴스를 통해 밝혀졌다.

보여주기 급급한 형태의 대책 대신 근본적으로 간호사 채용을 늘릴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간호사 1명 당 담당하는 환자 수를 법으로 제한하는 방법이 있지만 많은 이익집단과 충돌이 예견되기 때문에 쉽사리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양상이다. 간호사의 인권을 존중하고, 나아가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본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