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처럼 행동하는 동물

이 정도면 사람 아니야? 오랑우탄이 인간처럼 하는 행동 오랑우탄과 인간의 유전자는 96.4% 동일하다 글 : 안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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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과 인간의 유전자는 96.4% 동일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가 아닌 오랑우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물원에서 유인원의 행동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유인원과 인간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다.

유인원이란 척색동물문 포유강의 유인원아목에 속하는 동물들을 일컫는 말로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진원류의 다른 무리와 달리 꼬리가 없으며, 여러 가지 형질에서 인간과 가까운 점이 많다. 유인원은 긴꼬리원숭이류와는 달리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길며, 꼬리와 볼주머니가 없다. 또한 긴꼬리원숭이가 좌우로 좁고 등배쪽으로 깊은 가슴을 가지고 있는 반면, 유인원은 원기둥모양 또는 등배쪽으로 얕고 좌우로 넓은 가슴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랑우탄의 유전자는 인간의 그것과 무려 96.4%나 일치한다. 다른 유인원에 비해 생김새도 꽤 인간에 가까운 편이다. 사실 그동안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98.4%의 유전자 일치율을 보이는 침팬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제프리 슈워츠 교수와 버팔로 과학박물관 존 그레이 이사 연구팀은 "화석 증거를 토대로 볼 때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은 오랑우탄"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DNA 분석을 통해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기존의 정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 나타나는 수백 가지 신체 특징을 수집하고 이 가운데 인간,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에만 나타나는 특징 63가지를 추려냈다. 이러한 특징 중에서 인간과 오랑우탄은 무려 절반에 가까운 28가지를 공유해 유사점이 가장 많았으며, 침팬지와는 2가지, 고릴라와는 7가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침팬지와 고릴라는 11가지의 특성을 공유해 서로 아주 가까운 관계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즉 사람과 오랑우탄이 한 그룹으로 묶이고, 침팬지와 고릴라가 한 그룹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과 오랑우탄은 여러 가지 형질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최근 미디어를 통해 인간처럼 행동하는 오랑우탄의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 사람이 면봉으로 귀를 청소하듯 밀짚줄기로 귀를 파는가 하면, 새끼 오랑우탄을 안고 다니느라 생긴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염 효과를 지닌 약초를 씹어 즙을 낸 뒤 피부에 바르기도 했다. 또한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과정에서 생성된 톱밥을 입으로 불어 날려버리기도 했다. 오늘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행동으로 전 세계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오랑우탄의 기막힌 행동에 대해 소개하겠다.

누가 내 욕 하나? 밀짚줄기로 귀 파기

유튜브 SloggerVlogger

우리는 귀가 가려울 때 '누가 내 욕 하나?'라고 생각하며, 면봉이나 손가락을 이용해 귀를 청소한다. 만약 동물들이 면봉과 같은 도구나 손가락을 이용해 귀를 판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드 더들리동물원에 사는 오랑우탄 '스프라우트(Sprout)'의 행동을 보면, 오랑우탄이 왜 인간과 가까운 동물인지 알 수 있다. 스프라우트는 가느다란 밀짚줄기로 귓속을 깨끗이 청소한다. 마치 우리가 면봉을 이용해 귀를 청소하는 것과 유사하다. 스프라우트는 밀짚줄기로 귀를 파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손가락을 이용해 귀를 파기도 한다. 이어 밀짚줄기를 이용해 배꼽 주변을 다듬는다. 동물원 직원들은 스프라우트의 이런 행동을 '몸단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한편 더들리동물원의 웹사이트에는 여섯 살내기 스프라우트의 프로필이 올라와 있다. 프로필에는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스프라우트입니다. 보르네오오랑우탄으로 여자예요. 스프라우트는 동물원 사육사들이 지어준 이름이고요. 난 매우 활동적인 데다 우리에서 로프에 매달려 흔들흔들 그네 타는 것을 좋아한답니다"라고 적혀있다.

아이고, 어깨야…약초 파스 애용하는 엄마 오랑우탄

새끼 오랑우탄을 안고 다니느라 팔이 아픈 어미 오랑우탄은 소염 효과가 있는 약초 즙을 이용한다

하루 종일 새끼 오랑우탄을 안고 다니느라 팔이 아픈 어미 오랑우탄이 해결책을 찾아냈다. 일명 '약초파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오랑우탄이 파스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영국 엑시터 대학 생태보전센터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야생 보르네오 오랑우탄이 식용에 부적합해 보이는 식물을 씹는 이유에 주목했다. 2003년부터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주의 이탄 습지에서는 오랑우탄들이 '드라세나 칸틀레이(Dracaena cantleyi)'라는 식물을 씹어 즙을 낸 후, 피부에 바르는 모습이 드물게 목격돼 왔다. 아스파라거스과에 속한 이 식물은 쓴맛이 나는 사포닌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먹이로 삼는 동물이 드물다. 대신 사포닌은 강력한 소염 효과를 지니고 있어 인근 주민들은 드라세나 칸틀레이의 즙을 내 관절염과 근육통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오랑우탄 역시 이러한 효과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드라세나 칸틀레이를 쓰는 오랑우탄은 주로 암컷들로, 잎을 씹어 낸 사포닌 거품을 팔에 바르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는 새끼 오랑우탄들을 안고 다니느라 생긴 통증을 가라앉히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오랑우탄들은 사포닌 거품을 만든 뒤, 남은 잎은 삼키지 않고 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입 바람으로 톱밥 제거는 필수! 능숙한 톱질

유튜브 BBC

오랑우탄이 마치 인간처럼 톱질을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영국방송 BBC는 자연 다큐 프로그램 '스파이 인 더 와일드(Spy in the Wild)'를 통해 톱질하는 오랑우탄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오랑우탄은 보르네오의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는 암컷 오랑우탄으로, 평범한 오랑우탄처럼 보이지만 톱을 잡고 나무를 자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람과 비슷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톱질 중 나무에 쌓인 톱밥을 입으로 불어서 날린 후, 다시 톱질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옆에 놓인 오랑우탄 로봇이 톱질을 하자, 암컷 오랑우탄은 마치 경쟁을 펼치듯 더욱 열심히 나무를 자른다.

BBC의 이 프로그램은 야생동물의 생태를 생생히 들여다보기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으로, 오랑우탄 로봇 등 실제 동물과 똑같은 로봇을 제작해 그 안에 카메라를 숨겨 야생동물의 생태계를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한편 오랑우탄이 어떻게 톱질을 배웠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지만 오랑우탄에게 톱질을 가르친 적이 없다"며 "어느 날 갑자기 톱을 들고는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몇 년 전, 오랑우탄이 인부가 톱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오랑우탄도 입장 바꿔 생각할 줄 안다

오랑우탄도 상대방의 기분을 살필 줄 안다

이외에도 오랑우탄은 꽤나 인간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최근 오랑우탄을 비롯한 유인원도 자신이 상대방의 입장이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미루어 짐작해보는 '역지사지' 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역지사지는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본 언론에 따르면, 교토대학 야생동물연구센터와 독일 연구기관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유인원이 상대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오랑우탄과 침팬지, 피그미 침팬지 등 유인원 40마리에게 심리테스트를 위해 제작한 영상을 보여주고 이들의 시선이 어디에 주목하는지 '아이트랙킹'이라는 특수 장치를 이용해 분석했다. 해당 영상은 인간과 유인원의 의상을 뒤집어쓴 동물이 싸우는 내용이다. 인간과 동물이 싸움을 잠시 중단하자, 동물은 건초더미 그늘로 숨는다. 이에 화가 난 인간이 몽둥이를 찾으러 문 쪽으로 움직이자, 동물은 이 틈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숨는다. 연구팀은 몽둥이를 찾은 인간이 이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유인원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석했다. 영상을 본 유인원 40마리 중 20마리는 동물이 처음 숨었던 건초더미 쪽에 주목했다. 동물이 옮겨 숨은 다른 건초더미를 주목한 유인원은 10마리였다.

연구팀은 이는 가짜 유인원이 다른 곳으로 숨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간의 입장이 되어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현실과 다른 상황을 믿는 '오(誤)신념'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사고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이 없는 사이에 방 안에 있는 물건을 누군가 가지고 갔을 경우, 방에 돌아온 주인이 없어진 물건을 방 안에서 찾는 식이다. 연구팀의 히라타 사토시 교토대 교수는 "이런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유인원도 이런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간과 유인원의 심리진화과정을 밝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더 우수하고, 다른 생명체보다 존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도 역지사지를 하는데, 자칭 '동물보다 우수하고 존엄한 존재'가 역지사지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인간이, 동물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