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내 동생은 처남? 호칭에 숨겨진 불평등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내 동생은 처남? 호칭에 숨겨진 불평등 가족 호칭, 어렵다 어려워! 글 : 김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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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독 가족관계를 정리하는 호칭이 타 언어권 국가에 비해 두드러진다. 비교적 가깝게 지낸다고 볼 수 있는 4촌은 물론, 살면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8촌 관계의 친인척을 칭하는 호칭까지 마련되어 있고, 심지어는 친인척의 배우자 집안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도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가족관계 내의 호칭은 일반적으로 아주 오랜 기간 관습에 의해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바로 이러한 ‘호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짙어지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호칭 문제,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자.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아내의 동생은 '처남'?

다양한 호칭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문제 제기를 받고 있는 것은 단연 배우자 가족을 지칭하는 단어에 있다. 현재 관습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기혼 남동생을 서방님, 미혼 남동생을 도련님, 누나와 여동생을 각각 형님과 아가씨로 부르는 것에 반해 남편은 아내의 기혼 남동생을 처남, 언니와 여동생을 처형과 처제로 부르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가족들에게 ‘님’자를 붙이거나, ‘아가씨’등의 높임 표현을 사용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가족을 칭할 때 별도의 높임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의 여동생은 오빠의 부인을 오라비와 겨집(계집)의 합성어인 ‘올케’로 부르게 되는데, 정작 ‘올케’ 소리를 듣는 사람은 상대에게 ‘아가씨’라는 높임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이상하다며 단지 결혼을 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아랫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족 호칭의 비대칭성,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EBS 까칠남녀

남편의 집은 시댁, 아내의 집은 처가라고 불리는 것,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 다들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거기다 부계 가족은 친할 친(親)자를 사용하여 친가라고 부르는 것에 반해, 모계 가족은 바깥 외(外)자를 사용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할 따름이다. 이러한 비평등 단어들은 국가가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뿌리 깊게 존재해왔던 유교 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가부장제의 유교적 사상에 의한 남존여비의 잔재가 무려 2020년인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것이다. 시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는 흐름 속에 놓여있다.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승계하고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족으로 엮인 사람들이 굳이 위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호칭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대체할 단어,
뭐가 있을까?

사진: 국민참여플랫폼 국민생각함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호칭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상반기 국민생각함을 통해 실시된 '가족호칭에 대한 국민생각 조사'에 따르면 총 참여 인원 38564명의 95% 이상에 해당하는 37000여 명의 사람들이 '시댁·도련님·아가씨'등의 표현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해당 설문조사의 결과를 통해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수의 사람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JTBC 뉴스

이와 같은 목소리가 커져가자 국가에서는 이미 가족 호칭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2017년부터 국립국어원과 여성가족부는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정책 연구’ 진행을 통해 이듬해 12월 ‘가족호칭 정비안’을 마련했다. 해당 정비안에 따르면, 양가 부모는 구분 없이 ‘아버님, 어머님’으로 통일하되, ‘장인어른, 장모님’ 등 기존에 사용하던 호칭도 유지한다. 시댁과 처가의 명칭도 유사한 변화를 맞았다. 양가를 지칭하는 표현이 대칭될 수 있도록 ‘시댁-처가댁’ 혹은 ‘시가-처가’로 바꾸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또한 배우자의 손아래 동기에 대해서는 ‘도련님, 아가씨, 처남, 처제’ 대신 해당자의 이름을 넣어 ‘OO씨’로 부르도록 제안되었다. 이와 같은 개정안과 관련하여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성 평등 인식 확산에 따라 가족 호칭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언급한 한편, "가족 구성원 관계 같은 일상의 미묘한 사회적 관계는 교육이나 대중문화를 통해 자발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함께 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변화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이번 설에는 호칭 바로잡기부터!

사실 우리나라는 호칭에 굉장히 민감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에 속한다. 전 세계 207개의 언어 중 ‘너’라는 의미의 2인칭 대명사를 쓰기 꺼려 하는 7개의 언어 중 하나에 해당하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니 긴 설명 없이도 그 정도가 와닿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 혹은 ‘너’의 존대 표현에 해당하는 ‘당신’이라는 말을 써도 적대감 혹은 불쾌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랜 기간 가족 간의 호칭에는 많은 사람들이 민감함을 표현하지 않아왔다. 이는 특정 호칭을 오랜 시간 관습에 따라 별생각 없이 써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기혼 여성’이라는 특수 집단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족 호칭 문제는 결혼을 통해 새 가족 구성원이 되는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변화인 것이다. 누군가는 호칭에 불만을 표하는 여성들에게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기혼 여성들이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사진: 국민참여플랫폼 국민생각함

언어에는 힘이 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을 통해서 관계와 권력이 표현되기도 하며, 더 나아가 호칭은 상대의 신분을 담아내는 단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유의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혼을 통해 새롭게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 여성들은 새로운 집단 내에서 ‘나’라는 사람을 재위치시키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호칭은 말 그대로 관계를 규정하고 정립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설 연휴에는 “호칭이 별거냐?”라는 삐딱한 물음 대신 더 평등하고 나은 사회를 위한 움직임에 여러분도 함께 동참해 보는 것이 어떨까?